창세기 10장은 노아의 후손의 족보가 나오며, 11장에서는 유명한 바벨탑 사건과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노아의 족보가 나옵니다. 노아의 족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바벨탑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노아의 족보와 바벨탑 사건의 중요 포인트
창세기 10장과 11장에서 나오는 족보와 사건의 중요 포인트는 "새로운 세상에서 시작한 노아와 노아의 자손들도 모두 실패하였다."가 핵심입니다.
10장에서 모든 노아의 자손들은 노아가 축복을 하였거나, 저주를 하였거나 상관없이 모두
"이 땅 가운데서 흩어지는 것"으로 족보가 끝납니다.
거기에 더불어 인간들은 바벨탑이라는 하늘을 향한 탑을 만듭니다.
이 탑은 처음 아담과 하와가 그랬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스스로만을 위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행동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창세기의 처음 1장부터 11장까지 하나님을 떠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며 성경의 메시지를 차분히 보겠습니다.
창세기 10장 - 노아 후손의 족보
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3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성경은 먼저 야벳의 족보를 기록합니다. 창세기에서 족보가 나올 때,
저주받은 족보가 나온 후, 축복받은 족보가 나오는 구성을 보여줍니다.
즉 원래는 함의 족보가 먼저 나와야하나, 야벳의 족보가 먼저 나온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야벳의 자손들은 아주 간략하게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끝은 5절 처럼,
여러 백성으로 나뉘어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갈라져 살았다 라는 것입니다.
언어와 종족대로 갈라져 나뉘게 된 것은, 바벨탑 사건으로 인한 저주의 결과입니다.
야벳의 자손들 역시 노아가 축복했지만, 그들의 결과는 저주받은 결과임을 말해줍니다.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6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17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18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20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저주받았다는 함의 자손입니다.
함의 자손들 역시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 흩어진 결과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앞에 나온 야벳과 뒤에 나올 셈의 족보보다 내용이 풍성합니다.
함의 자손인 니므롯의 경우, 여호와 앞에서 큰 용사라고 하기도 합니다.
노아의 저주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외 상세하게 가나안에 현재 살고 있는 족속들이 함의 자손임을 설명합니다.
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3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니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32 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축복받은 셈의 족보입니다.
셈의 족보 역시 자손들을 설명하며, 중간에 바벨탑 사건이 있었음을 기록합니다.(25절)
축복받은 셈의 족보 역시 마찬가지로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 갈라진 결말을 맞이합니다. (31-32절)
10장 정리
10장은 노아의 모든 자손이 같은 결과를 맞이했음을 언급하며,
누군가의 축복과 저주가 중요한 것이 아닌
실제로 당사자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성경적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특정한 종교 지도자나, 어떤 영적인 사람,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람들의 말과 예언, 축복과 저주에 너무 사로잡혀 있는 기독교인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축복과 저주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즉 사람은 전달의 통로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말이 모든것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축복과 저주가 나타나는 결과는,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냐에 따라 결정되게 됩니다.
사람에게 휘둘리지 맙시다.
창세기 11장 - 바벨탑 사건

그 유명한 바벨탑 사건입니다.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1절에서 노아의 후손들은 동방으로 옮겨갑니다.
창세기에서 동방은 좋지 못한 곳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곳이 동쪽이며,
가인이 쫓겨난 곳도 동쪽, 롯이 선택한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도 동쪽.
창세기의 저자는 이러한 동쪽이란 상징으로 노아의 후손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있음을 표현합니다.
그들이 잘못된 길 끝에서 선택한 것은 탑을 쌓는 것이였습니다.
흔히 바벨탑을 긴 원통형의 탑을 생각하시는데, 고대 근동 사람들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의미의 탑은 위 그림과 유사한 형태였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탑을 [지구라트]라고 부르는데, 고대 근동에서 지구라트는 신의 세계에 닿은 통로, 신과 만날수 있는 곳 등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4절에 보면,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자신들이 주인이며, 자신들의 통제하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독립적이란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독립적이란 것은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가 주인인 삶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노아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하나님이 그들을 보러 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이 악한 것을 보시고 언어를 바꾸어 그곳을 혼잡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탑의 이름이 [바벨=발랄], 즉 혼잡하게 하다 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본문 중 하나님이 '그들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라고 하시는 것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여기서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모여있으면 계속해서 악한 일을 반복할 것이며, 그러한 현상은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악한 자들이 모여 있을때, 그들은 선한 일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악한자들은 모이면 계속해서 악을 재생산합니다. 하나님도 그들을 말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모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온 세상이 다시 한번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노아의 나이를 계산해보면 바벨탑 사건때까지 노아가 죽지않고 살아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번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했던 노아조차도, 이러한 모습들을 그저 지켜만 본 것입니다.
즉, 홍수 이전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타락한 시대가 다시 온 것입니다.
셈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족보
여기까지의 창세기의 이야기는 절망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홍수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다시 시작했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인간들은 여전히 악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모습만 나타납니다.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희망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본문입니다.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셈의 족보를 간략하게 다섯 아들 중 아브라함이 태어나는 아르박삿의 족보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간략한 상황과 배경을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내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상황이였으며, 하란이란 땅에서 거주하는 사람이였다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창세기 10장 11장 설교 주제 및 포인트 핵심
창세기 10장 11장은 거의 절반 이상이 족보로, 설교하기 힘든 내용이긴 합니다.
그러나 강해설교 또는 성경공부를 통해 1장부터 11장까지 왔다면, 할 얘기가 엄청나게 많은 장이기도 합니다.
1. 축복과 저주의 문제
바로 전장에서 이어져오는 내용으로, 노아가 했던 축복과 저주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후손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축복과 저주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그 전달통로가 될 뿐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당사자의 행동에 따라 바뀐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이나 단순한 계기에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축복받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바벨탑에서 나타나는 악인의 특징
바벨탑에서는 악한 인간들이 모여, 악한 행동을 반복합니다.
악인들의 모임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으며, 그들이 악한 것을 반복하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 우리는 나 자신이 속한 곳을 되돌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악인들의 무리에 속해 있는지,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 바벨탑에서 한가지 팁을 주자면, 저주받아 언어가 갈라진 것이 아주 큰 임펙트로 다가옵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이런일이 없었다면~ 영어 공부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이런 정도로 이 내용을 넘어갑니다.
그러나 신약을 아는 우리가 핵심적으로 짚어야 할 내용은, 이 언어의 저주가 완전히 해소된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께서 임하셨을때, 인간들을 나뉘게 했던 저주가 사라지고,
복음의 전달을 통해 하나가 될 수있게 하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2023.05.16 - [신학의 시선/설교 도우미] - 오순절 성령강림의 의미 사도행전 2장 1-13절
3. 하나님의 끝없는 은혜와 포기하지 않는 사랑
이렇게 절망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택해, 다시 한 번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려 하십니다.
이 포인트도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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