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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시선/창세기 강해

설교를 위한 창세기 강해9 - 아브라함1 (창세기 12장)

by 바리새뀨 2023.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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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1장의 창조시대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제 12장부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대표되는 족장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알고 있지요.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며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아보겠습니다.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이 선택받음에 대한 주요 포인트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아브라함이 어떤 환경 속에 있었는가?'입니다. 

노아가 부패하고 패악한 세상 속에서 살았듯이, 아브라함도 모든 사람들이 흩어지고 갈라서게 된 바벨탑 사건 이후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겐 큰 문제도 있었습니다. 바로 자식이 없는 것이였습니다. 

고대 사회 속에서 자녀, 특히 아들의 존재는 큰 의미가 있었는데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에게는 자녀가 아예 없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추측해 볼 때, 하나님을 만나기 전 아브라함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12장 본문과 주해

 

* 주해시에는 본문에 나오는 그대로 아브라함을 아브람으로, 사라를 사래로 명칭 하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어느 날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고 복과 저주의 근원이 되어 모든 족속이 아브람을 통해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아브람의 상황과 결단

 

우리는 흔히 아브라함이 떠나는 곳이 부유한 곳에서 아무것도 없는 세상으로 떠나게 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아브람의 결단이 엄청난 믿음의 결단처럼 생각합니다.

자신이 평생 사는 고향땅을 떠나 이방인, 나그네가 되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안정을 포기하고 모험을 떠나는, 리스크가 큰 결정이죠.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릅니다.

아브람이 살던 고향은 바벨탑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받아 흩어지고 갈라져 쫓겨나 지내던 곳입니다

즉,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오히려 심판의 자리에서 떠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준 약속은 고향을 떠나 지시한 땅으로 가는 것 외에는 더 큰 부요함과 자손, 복과 저주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만일 여러분께 대한민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대신, 100억을 주고, 안전을 보장해 주며,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게 해 준다고 약속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라면 갈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복이 되며/ 축복과 저주의 근원이 되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는" 하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은 자손의 복이며, 이름이 창대해지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민족이 아브람을 통해 복을 받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모든 민족이 의미하는 것은 바벨탑을 지어 심판받고 하나님을 떠나 복 받을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브람을 통해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노아가 방주를 만들게 하여 피조물들을 구원하였듯이, 아브람은 자기 자체가 방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의 근원이 된다 뜻이며, 모든 민족이 아브람을 통해 복을 받는다는 약속입니다.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다시 한번 이 땅을 아브람의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곳에서 아브람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해 긴가민가 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헛것을 봤을 수도 있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도착한 곳에서, 자신을 부른 신을 만났기에 이제 확실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신이 자신의 영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람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은 가나안에 계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곳에 도착해 하나님을 만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아브람이 가나안에 거류하는데, 가나안에 기근이 듭니다.

당시 고대 근동은 목축과 농경사회로, 기근이 든다는 것은 생존과 직접적인 견관이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의 선택은 애굽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가는 목적이 일시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거류하려 간다고 합니다. 거류한다는 것은 거주한다는 것이며 완전히 근거지를 옮기는 것입니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농경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브람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판단하여 애굽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이 삶을 결정하기 시작하자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애굽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아내를 취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자신의 아내 사래를 자신의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기로 계획합니다.

 

우리는 이걸 볼 때 의문이 생깁니다. 아브람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하고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아내를 뺏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을까요? 자신의 아내가 뺏길 것을 알면서 내려가는 남자... 아브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14, 15절을 보면 예상대로 됩니다. 결국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바로의 아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16절에서는 바로가 그것을 말미암아 후대하였다고 합니다.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나귀 탁타를 잔뜩 받습니다. 즉 지참금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 이렇게 행동한 것은 부인을 뺏긴 것이 아닙니다. 부인을 판 것과 다름없습니다.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이 이야기의 최대 피해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입니다.

바로는 정당하게 아내를 취했으며, 아내의 오빠라고 믿은 아브라함을 환대한 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와 그 집은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저주를 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거꾸로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은 아브람이 복의 근원이 아니라, 저주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이 되길 원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오히려 세상 가운데 저주의 통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20절을 보면 바로는 끝까지 선대하며 아브람을 다시 가나안으로 보내줍니다.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참금으로 줬던 재산도 빼앗지 않고 전부 가져갈 수 있게 합니다.

 

 

창세기 12장의 포인트

 

창세기 12장의 설교와 성경공부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아브람의 믿음

우리는 아브람이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나안으로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아브람이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간 것은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었으며 큰 믿음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아예 없는 세상에서는 이 정도 믿음도 복 받을 자격이 되었던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운 땅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자. 이전과. 다른 삶을 살자" 말씀하실 때 그것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이런 복이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지금 믿음이 없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믿음을 원하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아브람처럼, 간단한 명령에 순종할 사람을 찾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작은 명령에 순종할 때, 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땅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일은 기근이 들어 생존이 위협받게 된 일이었습니다.

약속이 있고 믿음이 있어도 좋지 못한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며 버틸 수도 있어야 합니다.

 

아브람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묻기보단 스스로 결정을 내립니다.

심지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악한 것을 골라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을 때 위기를 만난다면, 우리는 스스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물어야 하며, 그 자리를 때로는 끝까지 지키고자 노력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정리

 

오늘은 창세기 12장, 아브람의 등장과 행동에 대해 보았습니다.

다음시간에도 아브람의 이야기를 쭉 살펴보겠습니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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