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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시선/창세기 강해

설교를 위한 창세기 강해10 - 아브라함2 (창세기 13,14장)

by 바리새뀨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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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창세기 13장부터 15장의 스토리를 통해,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행동을 통해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았는지, 그렇게 인정받기까지 어떤 사건들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창세기 13-15장, 아브라함의 믿음의 성장

창세기13장_창세기14장

지난 12장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고향을 떠나 가나안땅으로 들어갔으나, 

그 후 기근을 견디지 못하고 애굽으로 이주하려 했던 사건을 보았습니다. 

 

그 상황 가운데 아브라함이 애굽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복이 되어야 할 아브라함이 오히려 저주로서 작용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약간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제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3장, 아브라함과 롯의 헤어짐

 

풍요 속의 기근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라함은 애굽의 바로에게 받은 돈으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내를 판 돈"으로 큰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스토리를 처음 듣는 1차 청자인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에서 보화를 챙겨 나온 아브라함과 자신들의 모습을 일치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그런데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자마자 문제가 발생합니다. 

고향을 떠날 때부터 함께했던 조카 롯과 분쟁이 생긴 것입니다.

 

그 분쟁의 이유는 놀랍게도 그들이 너무 재산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풍족하고자 하고, 나눌 수 없고 버릴 수 없으니 또 다른 기근이 찾아온 것입니다.

 

소돔을 택하는 롯, 가나안에 남은 아브라함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아브라함은 롯에게 선택권을 먼저 줍니다.

이는 당시의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포기하고 롯을 배려한 방법이지만, 가장 최고의 해결책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선택은 먼저 이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묻는 것이었습니다.

 

롯은 스스로 소돔 땅을 선택합니다. 이 선택은 마치 아브라함의 과거의 선택과 비슷합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같은" 소돔을 선택합니다.

더 풍요롭고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한 것이지요.

 

이를 자세히 보면 마치 어조가 창세기 3장의, "보기에 좋고 먹음직한" 선악과를 떠올리게 합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그대로 가나안 땅에 거주합니다.

아마도 가나안 땅이 소돔 땅 다음으로 좋고 풍요로운 땅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주했다는 것은, 

이전에 기근을 겪고 결핍을 겪을 때와는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에 머물기 시작하자,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은 17절에서 가나안 모든 땅을 두루 다니라고 하며,

그 땅들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아브라함은 아주 조금만 이동합니다.

아브라함_이동경로

벧엘과 헤브론은 거의 붙어있는 땅이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다니는 모든 땅을 주겠다고 하는데 안 다니고 그냥 그대로 머무릅니다.

왜일까요? 귀찮았을까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이대로 아브라함을 두시지 않습니다.

 


 

14장,  전쟁이 발발하다

 

가나안과 바벨론의 전쟁

1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3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4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5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6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7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8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
9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11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12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당시 정세를 살펴보면, 가나안 땅의 왕들 (왕들이라고 해도 도시국가의 지배자 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은 

바벨론 지역의 왕들에게 종속되어 조공을 바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지역이 조금 강성해지자, 조공을 바치지 않기로 결심하고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나안 지역의 왕들의 독립 염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전쟁에 대패를 하고 왕들도 잡혀갔으며, 재물은 더 잃었고, 백성들마저 포로가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중에는 소돔에서 살기로 한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있었습니다.

 

단으로 이동한 아브라함
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14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5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그때 그 소식을 아브라함이 듣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에서 키워온(?) 318명의 정예들을 이끌고 롯을 되찾기 위해 단까지 찾아갑니다.

 

이중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 당시 아브라함의 위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용병이 아닌, 자신이 보유한 병력이 318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시기로 추정되는 기원전 1900~1700년대에 318명의 정예를 거느렸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엄청나게 강력한 지역 호족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원후 800년대의 견훤이 철기병 700명으로 나라를 봉기했다고 하니, 

아브라함의 318명의 정예는 당시 인구대비로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강력한 힘을 갖춘 상황입니다.

 

두 번째 더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은 이 사건으로 이스라렝 땅의 북쪽 끝인 단까지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흔히 이스라엘의 영토를 표현할 때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라고 말합니다.

 

13장 후반부의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직접 단까지 움직이게 하신 것입니다.

 

멜기세덱과 십일조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라함이 전쟁에 이기고 돌아오자 사로잡혔다가 자유인이 된 왕들이 그를 영접합니다.

그중 살렘 왕 멜기세덱이라는 왕이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줍니다.

이 왕은 하나님을 아는 왕이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멜기세덱으로부터 제사장의 직분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멜기세덱은 멜레크(왕)+쎄데크(정의)의 합성어로,

정의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렘왕은 살롬, 즉 평화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고 시편에서 한번, 또 히브리서에서 언급됨을 통해 

신비한 궁금증을 자아내지만 성경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학문적으로 볼 때, 멜기세덱은 제사장 지파인 레위지파를 상징하는 존재로,

출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 중 레위지파가 십일조를 분깃으로 받는 것을 선행하여 보여주는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변화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사실 이 본문에서 봐야 할 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변화입니다. 소돔왕이 아브라함에게 재물을 주지만, 아브라함은 다소 오버스러울 정도로 그것을 거절합니다.

 

우리가 만약 누군가에게 고마운 일이 있어 선물을 주는데,그 사람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며 하나님께 맹세하오니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 하면 굉장히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자신의 모든 부유함과 성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만약 아브라함이 가나안 왕들의 재물을 받았다면, 나중에 아브라함이 크게 성공할 때 가나안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물을 기초로 아브라함이 성공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가나안 왕들의 재물을 받지 않습니다.애굽에서 부당한 이익을 얻고 돌아온 것과 달리, 이제는 자신의 고생과 노력을 통해 얻은 것들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제사장 멜기세덱에게) 그 대가를 드립니다.

 

애굽으로 내려갔던 아브라함과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은혜로 살아남은 아브라함이 이제는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핵심정리

 

1. 풍요와 빈곤

아브라함은 기근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을 느낄정도의 빈곤 가운데 애굽으로 내려갔고,

애굽에서 하나님의 은혜 덕으로 온 가족이 부유함을 얻어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빈곤할 때는 함께했던 가족이 풍요로워지자 갈라지게 됩니다.

이때 아브라함과 롯은 하나님께 방법을 여쭙거나, 자신들이 가진 재산을 줄이는 방식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풍요롭지만 부족함을 느끼며 갈라졌습니다. 

때로는 풍요로움이 기근보다 더한 상황과 환경을 만들기도 합니다. 

 

2. 보기에 좋은 것

또한 앞으로 살 곳을 정할 때 롯은 보기에 좋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같은" 소돔을 선택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랬습니다. "보기에 좋고 먹음직한" 선악과를 선택하여, 하나님께 반역했습니다.

이를 볼 때,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 좋은 것이라고 모든 것이 좋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롯이 떠날 곳을 정할 때, 하나님께 물었더라면

과연 하나님이 롯에게 소돔으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좋다고 하시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계획을 이루신다

롯이 떠난 후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머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주실 온 땅을 돌아다녀보라 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강제로 움직이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약속의 땅을 돌아보게 만드십니다.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이 있더라도, 

이를 주저하거나 순종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비록 우리가 바로 순종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4. 믿음으로 살아가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애굽에 내려갔던 아브라함.

이제는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인정하며, 가나안 왕들에게 재물을 받지 않습니다.

 

애굽때와는 달리 가나안 왕들에게 받을 재물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들의 어려움을 구해줬으며, 자신이 고생하여 전쟁을 치루고 얻은 정당한 댓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것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때로는 자신의 모든 수고와 노력으로 얻는 정당한 댓가마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꾸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 노력과 수고 없이 무언가를 얻길 바라며,

그것을 내가 얻을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고민할 때입니다.

 

5. 예언의 성취

조금 신학적인 주제입니다.
노아는 세 아들을 향해 예언하면서, 가나안은 셈의 종의 종이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물론 이 예언은 하나님이 주신 예언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 예언을 성취시키십니다.

14장의 전쟁 속에서 가나안은 바벨론에게 전쟁에 져서 포로가 됨으로서 *바벨론의 종의 되었습니다.

바벨론은 아브라함에게 패배함으로 인해 아브라함의 종이 되었습니다.

* 여기서 종이 되었음은 포로가 되었다, 즉 지배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뜻합니다.

 

즉 가나안은 아브라함(셈족)의 종의 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약속과 예언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이렇게 창세기 13, 14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성경공부와 설교에 도움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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