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바리새뀨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2장에 대해 강해하며, 설교 시 어떤 포인트를 짚으면 좋을지를 보겠습니다.
창세기 2장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성경의 장과 절은 원래 구분이 없었습니다. 구전이거나,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있기 때문이죠.
이후 성경의 문서화가 완료되고, 정경화가 끝난 뒤 편의에 따라 나눠진게 장과 절입니다.
그러다 보니 간혹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장과 절이 이상하게 나뉜 경우가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위 2장 1-3절은 1장에 포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되는데... 어쩔 수 없지요.
1-3절을 보면 1장에서 계속된 하나님의 창조가 끝납니다. 우리는 보통 창조의 과정을 6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2절에서 말하듯이 창조(하나님의 일)는 7일에 끝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안식을 포함한 창조가 완성입니다.
'안식'과 '보기 좋았더라'의 의미
1장과 2장 1-3절까지의 창조의 내용을 보면 하나의 구조가 보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피조세계가 순종하며,
하나님은 그 상태를 “좋았다(토브)”라고 평가하십니다.
토브는 선, 좋음, 완벽함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이 단어 들었을 때 '좋다' 라는 단어의 뜻을 우리가 가진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것을 아름답다, 완벽하다, 좋다, 선하다 등으로 이해하는데요.
하.지.만.
성경의 의미는 우리의 개념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단어를 원 뜻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 단어를 본문에서 나온 그대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는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것에 순종한 상태를 토브하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최초에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피조물은 순종하는 것을 좋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좋은 상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상태이며, 그 상태가 '토브' 한 상태이며,
그 '토브' 한 상태가 유지될 때 우리는 안식을 누리를 수 있는 것입니다.
2장에서의 창조 - 에덴, 인간, 선악과
2장 3절부터는 갑자기 창조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됩니다.
- 창조의 중복 기술 문제에 대해
1장에서 하나님의 창조가 이루어졌지만, 2장에서 마치 다시 한번 창조가 이루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내용을 보며 학문적으로는 창조에 대한 두 가지 전승과 기록이 존재하며, 이에 따라 두가지 모두를 성경 내 담았다는 주장이 있으며,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이 다른 점(1장 엘로힘, 2장 여호와)이나, 창조의 순서적인 부분 등을 볼 때 이러한 주장은 꽤나 납득이 갑니다.
그러나 설교 시 이러한 내용을 강의하기는 어렵겠죠.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거시적 - 미시적 관점에서의 두 번의 창조 기사 이론을 채택합니다.
1장에서의 하나님의 창조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관점에서 세상을 창조한 과정을 서술한 것이며,
2장에서의 하나님의 창조는 에덴동산이라는 비교적 적은 공간에서, 인간에게 집중한 창조의 과정을 서술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1장은 망원경, 2장은 현미경의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 생령과 생물에 대해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뒤 사람을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지만, 생기를 주심을 통해 인간은 생령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인간과 동물의 질적 차이에 대한 근거로 삼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원어에서는 저 생물과 생령이 모두 같은 단어입니다.
"חַיָּ֑ה נֶ֣פֶשׁ 네페쉬 하야"
살아있는 생명체(Living creature)
...즉 성경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하나님에게 똑같이 창조된 생명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자연을 통치할 권한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인간은 영혼이 있고, 다른 피조물은 영혼이 없다는 주장을 해당 본문을 통해 하기는 어렵습니다.
- 에덴 '동산'의 의미
그리고 하나님은 에덴에 동산을 만드시는데, 여기서 동산은 언덕이나 산 위가 아닙니다.
정확한 뜻으로는 울타리, 범위, 특정한 공간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가 이루어진 특별한 범위가 바로 에덴이며,
인간은 그 안에 창조되어, 그 안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에덴에서의 인간의 역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9-14절은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말합니다. 당시에 가장 풍요로운 땅인 티그리스강, 구스 땅, 유브라데 강과 그 땅의 귀금속들을 표현하며 하나님의 동산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말합니다.
15절에서 하나님은 그 좋은 곳에 인간을 위치시킵니다.
그리고 임무를 주십니다. 경작하고 지키다(히브리어: 아바드-샤마르)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인간을 농사꾼, 더 좋게 생각하면 동산지기 쯤으로 지었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민수기 3장 6-8절에서도 쓰입니다.
그때 이 표현은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일하는(시무, 시종)으로 사용됩니다.
즉 인간은 농사꾼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에덴이라는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지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은 이 세상 첫 번째 제사장이며, 에덴은 최초의 성전인 것입니다.
그럼 제사장은 성전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그것은 율법에 따라 성전을 정결하게 지키며, 정결하게 지킨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역할입니다.
그럼 아담이라는 제사장에게 주어진 율법은 무엇일까요?
'법' 과 '하나님과 인간의 구분선'으로서의 선악과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간단했습니다. 바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 라는 것이였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선악과를 만들어 사람을 힘들게 하냐? 라고 생각합니다.
왜 굳이 유혹거리를 만들어서 타락할 계기를 주냐? 하나님은 무슨 사이코패스인가? 라고 오해합니다.
선악과는 그러한 죄의 촉매의 도구가 아닌, 하나님과 인간의 구분을 짓는 도구이며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지만, 인간에게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한계이며, 자신의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하나님뿐입니다. 선악과는 하나님과 인간의 그 간격을 보여줍니다.
만약 선악과를 자유의지의 상징으로만 해석한다면,
결국에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은 인간이 실수할 수 있는, 또는 실수할 것을 아시면서도 유혹거리를 만드시고 끊임없이 인간을 시험하는 존재로 귀결되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선악과라는 것이
하나님과 인간을 구분하는 율법으로서의 의미가 있음을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돕는 배필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하나님이 만든 이 완벽한 세상 가운데에서도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 아담은 생물들에게 이름을 불렀고, 생물들은 그 이름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하셨던 일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 대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니, 혼자인 것이 너무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돕는 배필을 만들고자 하십니다.
돕는 베필(에제르 케네그도)은 무엇일까요?
돕는(에제르)는 우리가 아는 ‘에벤에셀’의 그 ‘에셀’입니다. 돕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베필로 번역된 케네그도는 ‘마주보고 서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를 해석하면 마주서서, 반대하며 돕는 존재 라는 뜻이 됩니다.
돕는 베필이란 표현은 우리가 부부관계로 많이 사용되지만, 실제 직역은 마주보는 도움입니다.
이 뜻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첫째로는 대등한 도움입니다. 두 번째는 반대하는 도움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대등한 도움, 반대하는 도움은 모두 상대방을 ‘지키는’ 의미를 지닙니다. 대상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상자가 잘 못 될 때 바로잡는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하나님을 대신한 도움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주한 도움자로서 인간에게 인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즉, 남편과 아내만이 돕는 베필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서로에게 돕는 베필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잘못된 길을 갈 때,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이 혼자 있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최근 개인주의화되고, 점점 더 혼자인 것을 추구하며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은 먼저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여자의 창조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아담은 하와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즉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정리
2장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1. (1장과 연결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상태인 '토브-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리고 그로 인해 주어지는 안식
-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순종하는 '토브'한 상태에서만 누릴 수 있다는 것
2. 인간과 에덴동산, 선악과
- 인간은 농사꾼이나 청지기로 지어진 것이 아닌, 최초의 제사장으로서 창조됨
- 에덴동산은 최초의 제사장들이 존재하는 최초의 성전
- 선악과는 자유의지의 상징이 아닌, 하나님과 인간을 구별하는 법
3. 돕는 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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