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난주 창세기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며, 창세기가 어떤 책인지 함께 보았습니다.
창세기는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잊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말씀하시며 시작하는 책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내용을 살펴보며 주해를 보겠습니다.
1. 창세기 1장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상상해 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은 보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모릅니다. 지금 막 거지꼴로 광야를 헤매다가,, 이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알아야겠습니다. 너무 불안하고 답답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고 물었을 때, 성경은 첫 번째 대답을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다.”라고 대답합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짧은 하나의 명제를 가지고도 하나님이란 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충분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① 하나님은 이 세상의 창조자이자 주인이 되신다.
우리는 현재 돈으로 물건을 사는, 거래를 통해 소유권을 확정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소유권을 생산으로 확정하는 것이 더 익숙한 시대였습니다.
지금처럼 산업계열이 분화되지 않아, 내가 만든 것이야말로 내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수단이었죠..
그렇기에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자라는 말은, 하나님이 이 온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동시에 의미하였습니다.
- 창조자의 의미
이스라엘 사람들이 익숙한 두 가지 신화, 이집트의 신화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는 모두 신들이 자신이 관장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도 어떤 분야의 신인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전쟁의 신으로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이 선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는 다른 신들처럼 자신의 주관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 말씀의 적용
우리는 이 사실을 많이 놓치고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영역에서 주인 되시며,, 모든 영역에서 주권, 주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삽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을 하늘 위의 노인네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스마트폰을 알까? 하나님이 K-pop을 알까? 이런 막연한 생각은 하나님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도덕적인 교훈을 반복하는 지루한 것으로 오해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것을 다 통치하십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이 세상 어떤 전문가보다도 더 깊게 이해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세상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가집니다. 주인은 자신의 소유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에 따른 책임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치하시며, 그 모든 것엔 나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이 뭘 아시겠어, 하나님이 뭘 하시겠어, 내가 알아서 잘해볼게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모든 것을 가장 잘 아시며,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② 하나님은 창조물이 아니시며, 유일무이하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근원이시며, 하나님 이전에는 그 무엇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 역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신화나, 메소포타미아의 모든 신화들은 태초에 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속 근본이 되는 무언가가 있고 거기서부터 신이 나타납니다. 보통 그 신들은 둘 또는 여럿이 함께 탄생합니다. (주로 선과 악의 두 주신/ 부부신의 형태로 태어나 그 두 신으로부터 세상이 창조-형성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시며, 홀로 존재하시며, 창조되거나 태어나지 않은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십니다.
- 말씀의 적용
이것은 당시 신화와 하나님의 차별점을 보여주며, 동시에 듣는 청자에게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모두 창조물입니다. 우리는 창조물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외의 또 다른 존재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빛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고, 물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고. 관계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달으며, 동시에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문턱 같은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문턱에서 걸려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주인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세상의 창조 과정
2절부터는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조의 시작은 혼돈하고 공허한 세상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전 땅과 흑암, 수면이란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왜 존재하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해당 내용에 대해 성경은 침묵하고 있으며, 유대인 전승에 따르면 천사들의 세계를 창조하신 후 천사들의 반역으로 인해 폐기된 세상의 흔적이라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우리가 올바른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성경이 침묵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도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아는 천사타락으로 인한 루시퍼 발생 설 같은 것은 개신교 정경 내에서는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침묵하는 건 우리도 침묵해야 합니다.
3절부터는 시작되는 창조의 과정을 보기에 앞서, 창조에 관한 여러 가지 관점들을 잠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2-1. 창조에 대한 관점
성경이 절대진리로 받아들여진 기간이 긴 서양의 경우, 성경의 창조내용을 문자 그대로 오래도록 받아들였으나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이러한 생각들이 많이 도전받으며 몇 가지 대답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① 젊은지구 창조론
성경의 계산 그대로, 우주와 지구의 나이가 6,000년 정도이다.
② 오랜지구 창조론
우주와 지구의 나이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6day= 6지질층/ 간격이론(1:1~2사이), 생물의 진화 등의 방식은 인정하지 않는다.
③ 유신 진화론(진화론적 창조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진화적 메커니즘을 활용 또는 프로그래밍하시고, 인도하셨다.
사실 서양권에서 처음 진화론이 나오고 지질학이 연구되고 오랜 지구가 인정받을 때에도, 서양의 기독교인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하진 않았습니다. 과학의 발전이 신앙과 마찰을 일으킨다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나 현재 미국과 한국에서는 유독 젊은 지구론이 큰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나타난 이유는 창조과학회라는 단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창조과학회에 대해
창조과학회는 최초에는 우리가 지금은 이단으로 보는 제칠일안식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칠일안식교의 창시자인 엘런 화이트는 어느 날 두 가지 계시를 보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이 직접 엘런 화이트를 천지창조의 시간으로 이끌고 가 6일간의 창조를 보았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지금의 지질구조가 홍수로 인해 뒤집히며 발생했다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주장은 제칠일안식교 신도들이 창조과학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지금도 이 두 가지가 창조과학회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입니다.
처음에는 이 창조과학회도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963년 미국에서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며 성경 읽기와 기도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법(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남이 이유)이 시작된 것을 계기로 미국의 교회들이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초하여 탄생한 위대한 미국이, 이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속국가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 상황을 잘 이용한 창조과학회가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진화론과 맞설 유사과학을 전파하고 해당 이론들이 주류 교단에도 퍼지게 되었습니다. 결국에 1970년도에는 창조과학이 주류 교단에서도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유학했던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창조과학을 접하게 되고, 한국에서도 창조과학회를 시작하면서(1980년대)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창조과학이 대세가 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이 교회를 다닌다면 젊은 지구론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해서는 우리가 창조의 과정들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팩트만을 모아 기록한 역사책이나 과학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저자들의, 그리고 대상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자 한 책입니다.
따라서 모순적인 기록이 존재할 수 있고, 현재의 관점에서는 비과학적인 서술들이나, 비도덕적인 서술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창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 기원전 1,000년 전의,000 사람으로 추정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과학적인 사실과 진실이 어떠하든 간에, 그 사실을 그대로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며,
보여주셨다 해도 모세가 그 본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 창세기 1장을 통하여 어떤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2-2. 창조의 의미
① 1-3일, 혼돈에서 질서로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우리는 창조의 순서를 많이 외우게시키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창조의 순서 자체를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선포는 사실 순서보다는 그 내용이 중요합니다.
1~3일의 창조를 보면, 몇 가지 눈에 띄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바로 나뉘라, 모이라입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창조가 있기 전 세상은 혼돈한, 즉 무질서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한 세상에 질서를 만드십니다. 빛을 창조하심으로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궁창을 통해 물을 나누시고, 땅과 바다를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1-3일의 창조의 진정한 의미는, 질서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된 세계, 하나님이 원하셨던 태초의 세상은 질서가 있는 세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혼돈하고 무질서한 세상이 아니라, 질서가 필요하고 구분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파괴된,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은 질서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무질서하며, 옳고 그름과 모든 것들이 구분되지 않은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1~3일의 창조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만드신 것입니다. 거시적인 창조의 개념인 것이죠.
질서 있게 구분된 시간과 공간은 피조세계 속 존재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② 4-6일, 공허에서 충만으로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하늘 가운데 여러 가지 해와 달과 별들 등을 창조하여 하늘을 채우십니다.
특이한 점은 성경은 태양과 달이 아니라 광명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의도적인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와 달과 별들은 신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에도 해와 달, 별들을 의미하는 단어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표현을 쓴다면, 애굽에서 오랜 기간을 보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관련된 신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전의 생각처럼, 하나님이라는 주신 밑에 여러 신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농경 사회에서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태양과 날씨에 따라 생명이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또한 과거 사람들은 하늘의 별들을 보며 점술을 하며, 신의 계시가 하늘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해, 달, 별들을 광명체라고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하늘에서 보는 것들은 신이 아닌 그저 피조물들이며,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임을 한번 더 강조하는 것입니다.
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후 하나님은 땅과 바다, 궁창에 생물들을 가득하게 채우십니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26절에서의 우리
이전까지의 창조와는 달리 하나님이 갑자기 우리라는 표현을 씁니다.
성경을 면밀히 읽으면 굉장히 의아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보통 세 가지로 해석합니다.
전통적인 견해: 삼위 하나님
전통적인 견해로서, 기독교 내에서 창세기 1장과 이후 하나님을 '우리'로 지칭하는 것은 삼위일체의 개념으로 이해됩니다.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사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 이후의 개념을 통해 형성된 견해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뿐 아니라 지금의 독자인 우리를 위해 삼위일체로서 자신을 계시하신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재귀대명사로서의 이해
시편에서 시인이 스스로를 두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또는 '우리가' 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3인칭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표현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관점
유대인 랍비들은 크게 아래 두 가지 개념으로 하나님이 스스로를 '우리'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형용사로서의 복수: 히브리어에서는 장엄한, 놀라운 것에 대해 뒤에 –임(복수형)을 붙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천상을 뜻하는 샤마임, 하나님을 부르는 엘로ㅎ+임이 이런 경우입니다.
천상회의에서의 표현: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창조 때 이미 천사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천사들을 대상으로 이 말씀을 하셨기에, 복수형을 사용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가르쳐주신 만큼, 이러한 복수형도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로 생각하는 것이 신앙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그리고 이 구절들에서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즉 신의 형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도 우리처럼 머리하나, 눈 둘, 손, 발이 있는 모습이겠거니 생각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리고 고대인들에게 신의 형상이란
자신들을 통치하는 왕, 그리고 신의 형상(조각상 등)을 통해 그 신의 통치가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왕국, 제국에서 왕은 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신의 혈통이기에, 그들은 신의 형상을 보이는 존재였습니다.
또한 신의 자손이며 신의 형상인만큼, 신에게 세상의 통치를 위임받은 신의 대리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과거 왕족들이 자신의 통치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써 선전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애굽에서 파라오, 즉 라 신(태양신)의 아들에게 이러한 내용들을 단단히 주입받았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의 형상이란 말을 듣는 순간, 고대 왕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왕만이 특별한 신의 형상이 아닌,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왕과 같은 존재라는 것임을요.
또한 신의 형상은 국경지대나, 왕의 영향력이 미치기 힘든 곳에 세워졌습니다.
이는 그 형상의 신이 그 지역을 통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대에는 신전들이 도시 높은 곳 또는 중심에 지어졌으며, 그 신전의 가장 좋은 자리에 신상을 위치시켰습니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그 신상을 보며 사람들은 이곳이 그 신의 다스리는 지역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는 국경지대에 왕의 동상(형상)을 세우고 왕의 명령문을 새겨두는 것을 통해 해당 지역까지가 그 왕의 통치구역임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엄격하게 자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바로 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습니다.
인간이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지역이며, 모든 존재가 인간을 보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짐을 깨닫게 만드는 존재인 것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왕과 같은 이 세상의 대리 통치자이며,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둘은 동등하게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이 세상을 오래도록 지배해 온 남존여비의 사상, 또는 일부의 여존남비의 사상은 모두 옳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죄로 인해 망가진 세상의 형태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미션을 주십니다.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습니다.
이 명령은 단순히 결혼하면 꼭 자녀를 낳아라, 인구가 늘어나야 한다, 자연을 개발해야 한다, 청지기 사명을 감당하자 등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들이 더 많아지며, 더 멀리 퍼지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지금의 바운더리에 멈추지 않고, 더 확장되어 넓히는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지금 현상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온 세상 가운데 이루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3. 정리
1장에서의 하나님의 창조는 궁극적으로 혼돈한 세상에 질서를 만드시고, 공허한 세상을 충만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창조 순서나 내용, 또는 문자주의 등에 빠져서 이 포인트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 질서 있게, 충만하게 완성된 세상 가운데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라는 미션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영역, 즉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출산이나 전도 등을 통하여 기독교인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혼돈한 세상을 질서있게, 공허한 세상을 충만하게 채우는 사명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것은 정의롭게, 구별 없이 혼돈한 가치관과 사회를 질서 있게,
그 가운데 공허한 사람이 충만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상 창세기 1장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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