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많이 익숙한 성전에서 구걸하던 못 걷게 된 자(구 성경: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치유한 사건입니다. 이 말씀을 그냥 장애인을 치료한 사건으로 보면 단순히 신기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천천히 의미를 짚어보면 성경은 이 사건을 통해 성령님의 중요한 역할을 설명해 줍니다.
본문
이 주해를 통해 홀로 설교를 준비하시는 많은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주해하기 앞서 본문을 먼저 보겠습니다.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주해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제 구시는 오후 세시쯤으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기도를 위해 성전에 올라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하루 세 번, 제삼시, 제육시, 제구시에 기도했는데 이것은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입니다.
즉 성령강림사건 이후 베드로와 요한은 꾸준히 성전에서 기도를 계속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도 시간에 맞추어 사람들은 성전 동쪽 미문(美門)에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두었습니다.
이는 나름의 배려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구걸을 통해서라도 먹고살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 주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겨야 합니다. 왜 장애인을 성전 안이 아닌 동쪽 문 앞에만 두었을까요?
아무리 통행량이 많은 출입문이라 해도, 성전 마당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더 구걸하기가 편했을 텐데요.
이유는 이스라엘의 율법상 장애인은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율법에 따르면, 장애인은 불완전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즉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을 장애인은, 평생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보지 못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 걷지 못하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구걸을 합니다. 보통 구걸하는 사람은 구석진 곳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선의를 베푸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습니다.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소외된 상태로 존재하며 사람들 역시 그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그 소외된 사람에게 주목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여기를 봐라! 우리를 봐라!"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걸인에게 자신을 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자신을 보라고 하는 말을 들은 걸인은 어떤 기분일까요?
고개를 들어보니 웬 이상한 아저씨 둘이 있습니다. 그들은 뭔가 확신에 찬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걸인은 아마도 크게 기대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부른다는 건 뭔가 많은 돈을 줄 것 같은 기대를 가져왔을 테니까요.
그러나 베드로는 그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립니다. 자신은 은과 금은 없다.라고 못을 박고 시작합니다.
아마도, 걸인은 기대가 컸던 만큼 크게 실망했을 것입니다.
이 이상한 아저씨들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말하며 뭔가 준다고 합니다.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걸인도 알 것입니다.
얼마 전 성전을 뒤집어 엎었다가, 제사장들에게 미움받은 그 나사렛 예수를.
얼마전 십자가에 못 막혀 죽었다는 그 나사렛 예수를 말입니다.
그리고 다시 보니 이 사람들은 그 죽은 예수의 깡패 같은 제자들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그러더니 베드로와 요한은 다짜고짜 걷지 못하는 걸인의 손을 오른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아마 걸인은 이 깡패들이 자신을 내쫓는다고 생각하고 크게 당황하고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평생 걷지 못했던 그가, 갑자기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걷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스스로 서고, 심지어 뛰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과, 이제 고침을 받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전으로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이전까진 불완전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던 그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사람들은 늘 자신이 봐왔던, 그 앉은뱅이 걸인이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에 크게 놀랍니다.
설교의 포인트
오늘 본문의 설교의 포인트는 꽤나 많습니다.
먼저 핵심 메시지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역사한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성령이 치유사역을 하셨다는 게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자격 없는 자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관점에서
베드로와 요한, 성령 받은 이 두 제자는 명확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바로, 소외된 자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미문(美門), 아름답고 화려한 문이라는 그 이름과 다르게 그곳에는 어두운 곳에, 소외된 약자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지 않고 지나갈 때,
이전의 베드로와 요한 역시도 그냥 지나쳤던
그 소외받은 약자를 성령받은 제자들은 주목하여 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성령 받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성령받은 사람은 이웃을 돌아봅니다. 특히 소외된 약자를 더욱 주목하여 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 예수님의 이름을 전합니다.
걸인의 입장에서
걸인은 불완전한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는 늘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결코 그 문을 넘어가지는 못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이끌지 못하고, 혼자 서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가 기대하는 건 단순합니다. 은과 금입니다. 다른 것은 생각도 못합니다.
단순히 먹고사는 것 외에, 생명을 연장하는 것 외엔 희망이 없는 삶입니다.
그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주어집니다.
그 순간 그의 불완전함이 완전히 해소됩니다.
이제 하나님 주변을 맴도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성소로 스스로 걸어갑니다.
희망이 없던 인생이, 오로지 은과 금으로 연명하는 인생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불완전하고 목적 없고 방황하는 삶을 완전하게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복한 삶으로 바꿉니다.
성령의 역사
"성령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역사한다"
이 모든 사건은 성령 받은 사람인 베드로와 요한이 걸인을 만날 때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의 주목을 하였고,
자신의 가장 좋은 것, 예수님의 이름을 주었고
그 결과 고통받고 불완전한 삶을 살던 걸인은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사도행전 3장 1-10절을 마치며
이 본문을 그저 치유사건으로 보면 위와 같은 의미를 절대 찾을 수 없습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일어난 게 신기한 기적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주변에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게 더 큰 기적입니다.
구약은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 저는 자가 나을 것이 예언하였습니다.
그 말씀처럼 오늘 성령님을 통해, 성령 받은 제자들의 이웃에 대한 사랑의 주목을 통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을 기억하며 성령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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