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바리새뀨입니다.
이번 신학의 시선은 성탄의 의미와, 성탄절 설교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제가 비록 대단한 설교자는 못 되지만,
올해도 다가오는 성탄을 맞이해 설교를 준비해야 돼서 머리가 아픈 상황인 사역자가 없는 상황 속 교회의 선생님들이나,
아직 스스로는 설교를 하기 힘든 초보 사역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준비합니다.
약간은 학문적인 내용이 될 것입니다.
학문적인 내용이 설교랑 무슨 상관이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내용을 보시면 풍성한 설교를 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설교를 위한 요약정리를 마지막에 해 두었습니다.
구성
성탄 설교 도우미 1. 성탄의 의미 - 본글
성탄 설교 도우미 2. 임마누엘, 예수님의 이름 - 작성 예정
성탄 설교 도우미 3. 낮은 자의 하나님, 예수 -작성 예정
성탄의 의미
성탄의 의미를 조금 더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성탄에 대해 언급하는 성경 내의 자료를 살펴봐야 합니다. 성탄에 대해 알기 가장 좋은 성경은 역시 4복음서겠죠. 그런데 성경 내 성탄에 관한 내용은 모든 복음서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오고, 동방박사가 찾아오고, 목자가 찾아오고, 예수님이 이집트로 피난 갔다가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하는 이야기 등은 모두 복음서들의 내용이 적절히 짜깁기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 예수님과 함께했던 사람들은 성탄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1. 4복음서의 성탄에 대한 관점 차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이 네 가지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책을 우리는 4복음서라고 부릅니다. 보통 일반 교인들은 4복음서가 비슷한 내용과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다고 생각하지만, 4복음서는 각각 쓰여진 시기, 내용, 분량, 목적이 각각 다릅니다. 이 중 나머지 세 문서와 다른 성격을 가진 요한복음을 제외하고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교인들은 마태복음이 가장 앞에 위치하기 때문에, 마태복음을 첫 번째로 쓰여진 복음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가 동의하는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는 마가복음입니다. 학자들이 생각하는 연대표는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마가복음이 첫번째 복음서로 생각되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① 마가복음의 문체가 마태, 누가에 비해 거친 편이며, 내용이 가장 간결하고, 초기 저작의 형태를 지닌다.
② 마가복음의 내용의 90%가 마태복음에, 50%에 누가복음에 동일하게 들어있으며,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을 제외한 자신들의 독자적 진술을 거의 공유하지 않는다.
③ 마가복음에서는 성탄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주기도문과 팔복에 대한 진술도 없다. 후기 저작이라면 이러한 중요한 내용을 생략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바로 마가복음에 "성탄"이라는 주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가장 초기의 기독교인들(또는 마가복음을 공유하는 공동체)은 성탄이라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다른 이야기들보다는 덜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을 가지고 더 후기에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은, 성탄에 대해 기록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태와 누가는 성탄에 대해 자신의 복음서 총분량의 10%에 가까운 내용을 할애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록을 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마가에게, 초기 기독교에게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성탄이 왜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마태와 누가에게는 필요했는가? 마태와 마가는 무엇을 목적으로 성탄에 대해 기록했는가?
그 목적이 바로 성탄의 의미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2.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성탄의 공통점
마태와 누가는 성탄에 대한 묘사점이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과, 예수님의 부모의 이름과 족보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예수님의 근본이 어디 있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님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정경 외 당시의 문서나,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들을 보면 예수님의 사생아설 등 출생에 대해 공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성경 내에서도 이상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당시 그 많은 처녀들을 두고 정혼한 남자가 있는 마리아를 선택했는가? 성경 내의 요셉과 마리아의 가족들은 왜 예수님에서 배타적이며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 아닌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부르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논쟁하기보다는, 마태와 누가 두 저자는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 명확히 못을 박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마리아에게 잉태되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임과 동시에 사람인 요셉과 마리아의 자녀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3. 마태복음에서의 성탄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는 예수님의 족보와, 우리가 익숙한 동방박사의 이야기와 헤롯이 베들레헴의 아이들을 학살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학살을 피해 예수님이 이집트에서 계시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포함합니다.
① 예수님의 족보
누가복음 3장에서도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지만,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초반에 배치한 누가복음과 달리, 마태복음은 가장 먼저 예수님의 족보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족보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강조하며 전통적인 유대 왕족의 족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마리아를 언급합니다.
이 족보가 주는 성탄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 선택한 아브라함으로부터 족장들까지, 족장들에서 다윗과 왕들에 이르기까지 적통한 유대인의 왕의 혈통을 타고났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예언하는, 하나님이 보내주시기로 약속한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구원자)임을 강조합니다.
두 번째, 여인들의 이름의 존재입니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마리아는 모두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아내가 아닙니다.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였으며 라합은 이방인 기생이었으며, 룻은 이방인임과 동시에 과부였고, 우리야의 아내는 솔로몬의 아내가 아닌 타인의 아내였으며 마리아는 결혼 전 아이를 잉태한 여인입니다.
이 여인들의 이름은 족장들과 유대 왕의 족보가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적통 문제를 내세울 수도 있고, 속된 말로 개족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 있고 하자 많은 족보 속에서도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주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성실히 지키시며, 그 문제 많은 족보 속에서 결국 메시아가 나옴을 통해 과거를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② 동방박사의 방문
많은 분들이 동방박사의 방문을 별달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시지만, 실은 동방박사의 방문은 굉장한 난제입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고, 몇 명이고, 온 시기는 언제이고...같은 사소한 문제부터, 이들이 왜 성경에 등장해야 했는가 역시 큰 난제입니다.
일반적으로 동방박사의 방문은 구원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이방인들조차 기다리며, 그 이방인들조차 예언을 깨닫는데도 헤롯으로 대표되는 유대 지도자들은 그 예언에 관해 무지함을 대비시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에게 황금, 유향, 몰약 등 왕에게 바칠만한 진상품들을 준비하였지만, 유대인들은 그 왕(메시야)를 죽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구약의 말씀에 굉장히 정통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또한 많은 학자들이 마태복음을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음서로 봅니다.
따라서, 마태는 동방박사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를 박해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만이 예언을 통해 약속된 진정한 정통의 구원자이며, 예수님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예언에 무지한 자들이며 메시아를 거부하는 존재로 설정합니다.
③ 이집트로의 피신과 헤롯의 학살
예수님은 당시 왕이었던 헤롯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며, 헤롯은 베들레헴의 남자아이들을 학살합니다.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마태는 이 모든 일이 이미 성경에 예언되었음을 말합니다.
또한 성경을 읽는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남자아이들의 학살을 피해 살아남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을 노예 된 상황에서 해방한 구원자였던 모세입니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예수님과 모세의 행적을 일치시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큰 구원자인 모세처럼, 예수님 역시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할 구원자가 되심을 암시합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이미 구약에서 예언되었음을 강조하며,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요약하면, 마태는 예수님의 성탄이 하나님이 구약에서 이미 약속하신 일들의 성취이며, 예수님의 정체성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할 약속의 메시아임을 강조합니다.
4. 누가복음에서의 성탄
누가복음의 성탄의 의미는 마태복음과는 조금 다릅니다. 앞서 기술했듯이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독자로 생각하고 작성되었지만, 누가복음은 이방인, 그중에서도 가난한 이방인을 대상으로 쓰여졌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따라서 성탄의 의미도 독자에 맞게 조금 다르게 묘사됩니다.
① 세례 요한의 부모와 마리아와의 상관관계
누가는 먼저 엘리사벳이라는 마리아의 친척이 세례 요한을 잉태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뒤, 성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재미있게도, 이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모두 임신했다는 것을 기뻐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엘리사벳은 이미 나이가 많아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마리아는 남편이 없기에 임신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두 사람은 모두 임신 사실을 외부에 숨깁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로,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런 식으로 임신한다는 것은 명예 살인을 당하거나, 신분의 격하가 있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임신 사실을 사람들에게 숨기며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신세한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내용 중 마리아의 찬가(눅 1:46-56)가 있습니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 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 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이 내용을 보면 누가가 예수님의 탄생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누가에게 있어 예수님의 탄생은 비천한 자가 복이 있는 사람이 되며, 권세 있는 자가 낮아지고 비천한 자가 높아지며, 부자와 가난한 자가 뒤바뀌는 것입니다.
억압되고 눌린 자가 자유를 얻고, 억압하는 자가 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는 이 세상을 불의하고 악한 자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나타나심으로 그것이 역전될 것이라 찬양합니다.
즉, 누가에게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는 정의의 실현이며, 약자의 구원입니다.
② 목자들의 방문
마태복음에서는 동방박사들이 방문한 것과 다르게, 누가복음에서는 목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일반적으로 굉장히 부유하거나, 사회 지도층 인사로 이해되는 동방박사와 달리 목자들은 사회적으로 인식이 아주 안 좋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목자를 양을 치며 양의 숫자를 속이거나 불성실하게 일하며, 불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여겨지며, 사회 속 피라미드 최하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목자들에게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며, 목자들은 자신들이 돌보는 대상인 동물의 밥통인 구유에 누인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최하층 계급인 목자보다도 낮은, 동물보다도 낮게 오신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누가는 이 진술을 통하여 예수님이 강자로서 약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닌, 약자로서 이 세상에 나타나 약자가 약자를 구원하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③ 예수님의 족보
처음 시작을 족보로 시작하는 마태와는 달리, 누가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공생애 시작 직전에 예수님의 족보를 위치시킵니다.
누가가 저술한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으로부터 역순으로 올라가 하나님까지 이어집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을 중점으로 유대인들을 조상으로 한 마태와 달리,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자손이 아닌 하나님의 자손임을 명확히 합니다.
또한 누가가 공생애의 시작 전 하나님을 향한 족보를 위치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구원자가 아닌 온 인류의 구원자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음을 진술하는 것입니다.
***
5. 설교자를 위한 정리
이렇게 아주 얕게나마 복음서 내의 성탄에 대한 진술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유아, 유치부나 초등학생 저학년들이 대상이라면 성경 속 내용들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중·고등학생, 청년들, 심지어 초등학생 고학년들만 해도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의 탄생일이란 것, 예수님의 탄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성탄절이 어떤 날일까 하니, 커플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날이라고 말하던 고1 친구가 떠오르네요.)
그렇지 않더라도 동정녀 탄생과 같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 같은 경우는, 그 의미를 짚어주지 않고 스토리만을 설교하면 믿음이 있는 친구들도 마음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고학년일수록 성경의 말씀 속 의미에 대해 집중하여 설교를 하셔야 합니다.
공통 : 예수님의 성령으로 잉태되심(동정녀 탄생)의 의미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잉태되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마리아와 요한이라는 인간 부모를 가진 인간이시다.
▶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인간이시기도 함을 잊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인간이시기도 하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줍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와는 달리 죄의 유혹도 받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도울 수 있으며, 기도로 능력을 발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되었지만 또한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을 분명히 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예수님이 요한이라는 아버지를 갖기 위해서는 그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요한의 입장에서 마리아의 말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며, 증명할 수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혹은 마리아의 임신소식이 그를 분노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처음에는 조용히 혼약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고, 후에 하나님께 마리아의 임신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그대로 마리아를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역시도 어떨 땐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용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는 그 누군가의 변명이나 설명이 날 더 화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아무리 사실처럼 믿겨지지 않을지라도 진실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용납할 때 나의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통 : 예수님의 족보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족보는 불완전한 유대인의 족보입니다. 그들의 족보에는 부정한 여인들이 있었고, 하나님을 떠난 왕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족보에서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까지 이어집니다.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위한 구원자로서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지만, 완전히 실패해버린 유대인들의 족보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그 족보 속 다섯 여인은 모두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가운데 자손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족보에서 예수님이 나오셨습니다. 이제 그 족보는 실패한 족보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대로 구원자를 낸 족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며, 어떤 최악의 상황도 역전하십니다.
누가복음의 족보 속에서 우리는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는 백성만을 구원하시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시며, 때로는 일반 사회 속 사람들이나 타 종교인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갖고, 또는 특정 집단에 대해 혐오감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모든 사람을 구원하길 원하십니다. 누가복음의 족보 속에서 우리는 우리 마음속의 벽을 허물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마태 : 동방박사와 이집트로의 피난, 헤롯의 학살
▶ 예수님의 탄생 가운데, 항상 메시아를 기다렸다고 했던 유대인들은 이방인인 동방박사들보다도 예수님의 태어나심의 징조를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알고도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도 신앙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특별히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기대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지금의 하나님과 멀어진 상황에서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오길 원하시지만, 여전히 이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예언의 말씀의 성취로, 이스라엘의 구원자였던 모세처럼 묘사하여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자신의 약속을 지키심을 보였듯이, 우리 역시도 그 약속의 성취를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많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주셨을 수도 있고, 성경 내의 모든 말씀이 지금의 나에게 주시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때로는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누가 : 세례 요한의 부모와 마리아, 목자들의 방문
누가복음은 특별히 약자의 시선에서 쓰여진 성경으로 많이 읽힙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속 예수님의 탄생 과정은 어쩌면 처절하고 비참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이야기입니다.
▶ 세례 요한의 어머니였던 엘리사벳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둘 모두 축하받기 힘든 임신을 하였습니다. 과거 사회 속에서 이러한 임신은 사회적 질타는 물론이요, 목숨까지도 위협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비천한 자들을 위해 오셨으며, 불의한 세상을 역전시킬 것이라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불의한 힘이 다스리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생애 동안 억눌린 자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외면한 세상의 권력(논리)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현시대의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힘의 논리 등 지금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악한 권세를 이겨나가고 약자들이 살아나가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 목자들은 천사의 계시를 따라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회 피라미드 가장 하위층에 있던 목자들, 그 목자들보다도 밑에 있는 동물들의 밥통 안에 계신 구원자를 만났습니다.
가장 낮은 자들보다도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할 자가 강자가 아닌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많이 가진 상황에서, 내가 더 강한 상황이여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약자로 오셔서 약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 역시도 내가 지금 상황이 안된다고, 내가 지금은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여 선을 행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행하며 예수님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
이렇게 성경 속 성탄의 의미를 짚어 보았습니다.
다소 학문적 내용이 많지만,
성탄의 의미를 생각하며 설교를 준비하시는데 도움되시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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