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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시선/신학적 사고

기독교의 반지성주의 사례에 대해 - 신학의 시선

by 바리새뀨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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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oogle 검색, 기독교 반지성주의 키워드

한국 기독교 내에 수많은 문제점 중 가장 큰 문제점을 꼽는다면, 많은 분들이 반지성주의를 꼽습니다.

실제로 사회 속에서 만나는 많은 비기독교인, 교회를 좀 다니다 끊은 분들(신앙이 없는 분들), 가나안 교인들의 많은 케이스가 교회가 싫은 이유를 기독교의 반지성주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반지성주의는 사고와 논리적 생각보다는 직관과 감성 등을 우선시하며, 더 나아가 수학, 철학, 지식, 교육 등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해 적대감과 불신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나의 신앙과 믿음, 경험을 우선시해 일반적으로 사회에 널리 알려진 이론과 개념들을 부정하는 것을 뜻하겠지요. 쉽게 말해 무식한 겁니다.

 

기독교인의 반지성주의는 여러 가지 사례들이 있겠지만, 사회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겪었던 사례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비이성적·비논리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키는 사고

2. 창조론·진화론 논쟁 등 과학에 대한 태도

3. 무조건적인 신앙 강요 (+ 배타성)

 

이 세 가지 사항은 사실 각각이 완전히 구분되지 못하고 함께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 가지는 사회 속 비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교회 내 많은 사람들에게도 신앙에 대해 굉장한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한번 봅시다.

 

 

1. 비이성적·비논리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키는 사고

사랑의교회 입당예배

"하나님이 다 하셨다" 로 대표되는 사고방식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흔히 하는 방식이며, 교회 내에서 믿음이 좋은(?) 분, 특히 교회 내 어른이거나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 믿음이 조금 덜 좋은(?) 분에게 주는 스트레스 상황입니다. 

 

내게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꼭 가고 싶던 직장에 취업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위의 믿음 좋은 분이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하나님 덕분에 이번에 취업된거야. 하나님께 감사해야 돼~!!"

"하나님이 취업시켜주셨으니 교회도 더 열심히 다녀~"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새로 취업한 직장에 첫 출근하는 날 차 사고가 났습니다. 많이 아픕니다. 첫 출근날 못 가서 채용도 취소되었습니다.  위의 믿음 좋은 분이 병문안 와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 계획이 있으셔서 그러신거야~ 그 직장은 가지 말아야 했나 봐."

"하나님이 취업 잘했다고 교만해질까 봐 그러신 거야. 기도해봐~"

 

이런 방식으로, 이 세상 모든 사건과 모든 만남과 모든 일들을 다 하나님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는 경우입니다.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입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종교이지요. 그렇기에 위의 경우처럼 말하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 취업을 시켜주실 수도 있고, 채용을 취소시킬 수도 있고, 다치게 하실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깊을수록, 더 종교적인 사람이 될수록 이런 행동은 심화됩니다. 내가 영적인 눈으로 볼 때는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질서와 역사 속에 움직이고 있는데 도무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그걸 알려줘야만 합니다. 이 진리를 알아야지 저 사람도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복 받을 수 있습니다. 나 역시 그것을 깨달았을 때 더 행복해지고 더 믿음이 깊어졌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신앙인인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반복하여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것이 듣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스트레스가 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잘해서- 내가 실수해서 생긴 일인데 전후좌우 사정이나 환경, 요인들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그저 하나님 덕분에/때문에 라고 말하고 무조건적인 동의를 요구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생각 없는, 종교에 미친 사람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심지어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도 이러한 접근은 거부감을 일으킵니다. 나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우에 따라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실제로 말하는 나조차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야만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경우까지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일을 하나님 덕분에/때문에로 돌리는 말들은 때로는 듣는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믿음을 갖게 하는 시작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듣는 사람과 상황을 잘 고려해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접근 방식, 말들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만나본 사회 속 비기독교인들/ 교회에 지친 사람들은 기독교의 반지성적인 모습으로 이 사례를 많이 꼽았습니다.

 

공감도 하기 전의 나의 경험을 적용하여 평가한 뒤 그것을 하나님과 연관지어 말하는 것, 비이성적인 것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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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창조론·진화론 논쟁 등 과학에 대한 태도

진화론vs창조론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반지성주의라고 말하게 되는 케이스입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에서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문자주의적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과학적/이성적인 명제들과 기독교적 명제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일입니다.

 

진화론vs창조론의 경우 많은 논쟁과 자료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창조론을 대표하는 창조과학을 통해 성경 속 7일 창조에 대한 믿음을 굳세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신앙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확고하냐면,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기독교인들이 소송을 겁니다. 한국에서도 수업 시간에는 듣고 시험은 잘 치지만 그런 악마 같은 이론은 잘못되었다고 가르칩니다. 믿음을 지키는 방법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창조과학이 신뢰성이 있고, 진화론이 엉망진창인 가짜 과학이며 '진화'라는 믿음을 신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확증편향" 입니다. 내가 처음부터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정보만 받아들이는 경향이지요. 기독교인들이, 믿음이 좋은 분들이 확증편향이 정말로 심합니다. 이러한 확증편향에 물들게 되면, 자신의 신념과 믿음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이렇게 기독교인에 진화와 창조에 대해 확증편향을 갖게 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목사님이/ 전도사님이 그렇다고 하니까

② 성경의 7일 창조가 명백히 쓰여있으니까

③ 진화론에 대해 잘 모르니까/ 많은 과학자들이 창조과학이 맞다고 하니까

 

①번 같은 경우의 태도는 빨리 버리는 게 좋습니다.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이 하는 말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의외로 젊은 층에서도 많이 나타납니다.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도 사람이며 한계가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여러 가지 분야에서 이 글을 읽는 당신보다도 지식이 부족하고 통찰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목사님은 나에게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이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아니며,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이 아닙니다. 진정한 개신교인이라면 목사님이 하시는 설교와 성경 해석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말씀 해석이 맞는지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②번 같은 경우가 제가 보기에 가장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믿음이 좋은 것이 잘못이 아닌데, 성도들이 이렇게 믿는 것은 교회가 자신의 이기심으로/ 신학적 견해의 차이로 성도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을 전부 다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문자주의"라고 합니다. 쓰여진 그대로 성경의 일점 일획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죠. 보통 문자주의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성경의 7일 창조를 그대로 믿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은 결단코 역사책이나 과학책이 아닙니다. 순수하게 팩트를 기록한 책이 아니란 것입니다. 성경은 저자/편집자가 자신의 처한 상황과 시대 속에서, 그 시대에 맞는 글 쓰는 방법으로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기록한 책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에 7일 창조와 종류대로 지었다는 말씀이 있다는 이유로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것은 잘못된 관점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본다면 창세기 1장부터 시작되는 창조 이야기가 우리에게 천지창조의 모든 순간을 말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의 창조자이자 주인이심을 선포하며, 혼돈과 공허가 없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함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문자주의에 대해서는 차후 다른 포스팅에서 다루겠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진화론에 대해 잘 모릅니다. 정말로 '원숭이가 인간이 되었다' 라는 것이나, '많이 쓰면 많이 쓰기 편한 대로 바뀐다' 와 같은 용불용설을 진화론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한 창조과학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화려한 이력과 말솜씨에, 수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할수록 창조론을 인정하게 된다는 소문으로 인해 창조론이 옳다는 믿음을 가집니다.

 

저 역시도 이러한 생각을 많이 가졌습니다. 창조과학 세미나 영상들을 찾아보고 창조과학에 관한 생물학/지질학 책을 찾아보며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린 것이 없구나!! 라며 신이 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걸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전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에 대한 반감을 잠시 접고, 제대로 된 책을 한 권 읽어보는 것만으로도...창조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검증 내용을 보는 것만으로도...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손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제가 설명하기엔 지식도 적고, 너무 내용이 길어지기에 적지 않겠습니다. 직접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

 

진화론과 창조론만을 이야기했지만, 이외에도 수많은 사회과학적 통계(질병, LGBT 관련 등)이나 연구결과들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배척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믿는 목사님/ 약사/ 의사/ 과학자의 말만 듣거나, 나의 신앙에 기초하여 다른 이야기들은 아예 알아보지도 않으려고 하거나 연구 결과나 통계가 나온다면 조작이나 조사 방법을 의심하고, 더 나아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권력이 과학계를 주무른다고 생각하는 음모론까지 나아가기도 합니다.

 

과학자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양심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신앙에 모든 것을 걸었듯이, 그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 진심인 사람들입니다. 물론 모든 과학자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대로 된 과학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연구 결과를 조작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심지어 논문을 저널에 투고하여 피어 그룹(같은 분야의 과학자)의 검증을 통과한다는 것은 그 주장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적어도 정말 우리가 한두 번은 들어봤을 저명한 과학 저널에 실렸던 이야기라면, 무조건적인 의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기독교인은 자신만이 진실을 안다고 생각하거나, 믿음에'만' 기반하여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반지성적인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하시고, 우리는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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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조건적인 신앙 강요 (+ 배타성)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대표되는, 무조건적인 신앙 강요와 배타성입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로서, 예수님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며 더불어 지금 이 세상에 산적해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기독교인들도 저와 같은 신앙의 고백을 할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인인 우리의 고백입니다. 사회 속 우리보다 훨씬 많은 비기독교인들은 이 고백에 동의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기독교인이 이 명제를 비신자들에게 강요하듯이 말합니다.

 

그렇다면 전도를 하지 말란 말이냐? 그것이 아닙니다. 역지사지를 해보자는 겁니다. 만약 독실한 불교 신자가 저에게 와서 "부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극락에 가려면 부처님을 믿고, 지금 당장 절에 오셔서 수양을 시작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면, 제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절에 가서 수양을 시작할까요? 하다못해 그 말을 마음속에 두게 될까요?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전도할 때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딱 그렇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그 말을 금방 안 받아들이면 될 때까지의 마음가짐으로 찾아갑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길에서 찬송가를 틀고 전단지를 나눠주며, 시위의 반대쪽에서 팻말을 들고 북을 치며 목놓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기까지 합니다. 우리야말로 광신도 그 자체입니다.

 

거리에서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직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기독교인 가정에서 비기독교인 예비 사위/며느리에게 교회를 다니는 조건으로 결혼을 허락하거나, 사망한 고인에 대해 기독교 신앙이 없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말하거나, 타 종교인에게 그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다라고 말하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물론 이러한 전도방식, 불특정 다수에게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전파하거나, 지인에게 갑자기 예수님 믿어야 된다고 전하는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한 명이라도 예수님을 믿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우리가 들은 수많은 간증에서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그 한마디로 돌이킨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갖게 됩니다. 오히려 기독교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전도의 길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1980년대 이후 길거리 전도나 의도를 가진 행사를 통해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간증을 자세히 들어보면 이전에 교회를 다녔거나, 어떤 기독교인의 헌신적인 노력 후에 한참을 잊고 살다가 그것이 계기가 되어 믿음으로 돌아온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자연 상태- 아무런 생각도 없던 상태에서 노방전도나 기독교의 정치적 액션을 통해 믿음이 생긴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일견 배타적인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타성을 공격의 형태로 나타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사람에게 더더욱 헌신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쉽습니다.

내 신앙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배타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쉽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말없이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내 시간과 돈을 나누는 것은 어렵습니다.

 

기독교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가는 종교입니다. 크고 쉬운 길을 마다하고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종교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

 

 

이렇게 바리새뀨가 가진 신학의 시선에서, 기독교의 반지성주의적인 모습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반지성주의 사례들은 훨씬 더 많지만, 제가 사회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토로했던 큰 사례들은 위와 같았습니다.

 

대부분 이런 사레를 말해줬던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의 반지성·무지성적인 행동을 끊어내지 못하는 마음 약하고 착한 사람들이거나, 부모-부부와 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했던 사람들이었던 게 기억납니다. 

 

사례들을 간단히 정리하다 보니, 대부분 반지성, 비이성적인 행동은 기독교인들 자신이 배우기 싫고, 공부하기 싫고, 쉽게 살기 위해 선택하는 길이 아닌가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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